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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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1950

'조선의 간디' 고당 조만식

  • 1992년

    10월 20일
    오두산 통일전망대에 제2동상 건립

  • 1991년

    11월 5일
    국립묘지 제2유공자묘지에 안장

  • 1984년

    6월 12일
    고당조만식선생 기념관 건립

  • 1976년

    12월 7일
    어린이대공원에 고당 조만식 선생 동상을 건립 제막

  • 1970년

    8월 15일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수여

  • 1950년(68세)

    6월 10일
    북한공산측에서 김상용, 이주하와 교환 석방 제의
    6.25 이후 생사 모연

1949~1920

'조선의 간디' 고당 조만식

  • 1948년(66세)

    11월 27일
    가족 월남

  • 1946년(64세)

    1월 2일
    신탁통치 반대운동 전개

    1월 5일
    소련군정 및 김일성의 조선공산당과 결렬됨으로써 이날 밤으로 소군에 의해 평양 고려호텔 1실에 연금. 얼마 후부터 행방불명이 됨

    1월 6일
    친위대 무장해제

  • 1945년(63세)

    8월 15일
    민족해방을 맞이하여 17일에 평양에 귀환
    건국준비위원회를 창립, 위원장에 추대됨

    8월 28일 좌파와의 연립 평남인민정치위원회 수립에 따라 위원장에 피선

    11월 3일
    조선민주당 창립, 그 당수로 추대. 부당수에 이윤영, 최용건

  • 1937년(55세)

    4월
    평양 경찰서에 연행되어 관여 모임의 해산을 강요받음

    6월
    중순, 동우회 사건으로 검거 선풍이 일자 서울에 압송되어 20여일만에 석방

  • 1936년(54세)

    평양에서 을지문덕장군묘수보회를 창립하고 그 회장에 취임

  • 1932년(50세)

    6월 15일
    제 8대 조선일보사장 취임

  • 1931년(49세)

    5월 16일
    신간회 해체에 즈음하여 백선행기념관에서 그 해체를 반대하는 연설을 함

    7월
    만보산 사건의 사태 수습에 평양에서 앞장 섬. 이 무렵 평양에 인정도서관 건립

  • 1930년(48세)

    국민 체력 향상을 위해 평양에서 관서체육회 회장으로 선출

  • 1928년(46세)

    4월 30일
    숭인상업학교로 정신 인가를 받아 교장에 취임

  • 1927년(45세)

    2월 15일
    민족단일전선 신간회 창립 때 동 중앙위원 겸 평양지회장

    9월
    일제의 교장 인가 반대로 숭인중학교장 사임

  • 1926년(44세)

    가을, 오산학교교장을 사임하고 평양 숭인중학교장 봉직. 이 해 평양에 백선행기념관 설립

  • 1925년(43세)

    오산학교 교장 재취임

  • 1923년(41세)

    3월
    연정회 조직에 관여하는 한편 조선민립대학 기성회 운동에 적극참여, 이상재 , 한용운, 송진우, 현상윤 제씨와 동 중앙집행위원으로 활약, 이 해부터 평양 산정현교회의 장로가 되어 김동원, 오윤선 장로와 함께 평양의 3장로가 됨

  • 1921년(39세)

    4월
    오산학교장 허가가 일제에 의하여 보류되자 평양에 돌아와 평양 YMCA 총무에 취임

  • 1920년(38세)

    1월
    가석방으로 출옥

    8월
    평양에서 조선물산장려회 창립. 회장에 추대됨

    9월
    상경하여 경성형무소에 투옥된 3.1운동의 민족대표이자 오산학교 교주인 남강 선생 면회. 가을 정주에 돌아와 오산학교에 다시 부임

1919~1885

'조선의 간디' 고당 조만식

  • 1919년(37세)

    2월
    오산학교 교장직을 사임하고 3.1만세운동의 지방 주동자로 활약

    3월 3일
    강서 모락장 만세운동에서 관여함

    3월 4일
    중대 사명을 띠고 도인권씨와 상해로 향하던 중 평남 강동군 열패에서 일헌 보조원에 체포되어 평양 형무소에 투옥됨

  • 1915년(33세)

    5월 오산학교 교장에 취임

  • 1913년(31세)

    3월
    명치대학 전문부 법학과 졸업

    4월
    남강 이승훈 선생이 세운 평북 정주 오산학교 교사로 초빙되어 부임

  • 1911년(29세)

    장로교와 감리교 연합의 동경 조선인 교회를 백남훈씨 등과 함께 설립
    동경 조선 YMCA 이사장

  • 1908년(26세)

    3월
    평양중학교 졸업

    4월
    일본 동경에 유학. 정칙영어학교 수학

  • 1905년(23세)

    평양 숭실중학교 입학

  • 1904년(22세)

    3월 13일
    노일전쟁을 만나 일가족이 대동강 중류지방 베기섬으로 옮겨 피난생활.
    신상호 소년과 가까이 지냄 그 무렵 한정교를 통하여 기독교 신자가 되고, 이때부터 곧 금주단연을 하게 됨

  • 1897년(15세)

    포목상·지물상 상업에 종사함(~1904)

  • 1888년(6세)

    (~1896) 평양 관후리 서당에서 장정봉 선생으로부터 김동원·한정교 등과 한문 수학

  • 1883년(1세)

    2월 1일(음력 1882.12.24)
    평남 강서군 반석면 반일리 내동에서 창녕조씨 경학씨의 외아들로 출생
    어머니는 경주김씨 경건여사. 누이로 보패, 누이동생에 은식 여사가 있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