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당 선생의 탄생일을 기념하여 매년 2월 1일에는 경모회를 가족과 각계인사, 제자 그리고 고당선생을 기리고자 하는 분들이 모여 영락교회, 오산고등학교 등에서 대부분 개최하였으나 93년 이후에는 주로 세종문화회관 대회의실에서 성대하게 거행해왔다.이는 1991년 7월 20일자 중앙일보에 북한 외무성 제1부상(차관)이었던 박길룡씨가 고당 순국일을 1950년 10월 18일로 증언함으로써 93년 이후부터는 매해 10월 18일을 고당의 추모일로 정해 이날 추모행사를 갖고 있다.





암울했던 일제의 식민통치하에서 정치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고당선생은 정치적 독립만큰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경제적 독립운동이라고 생각하여 일제에 의해 장악되었던 시장을 우리 국산품애용으로 바꾸어가자고 전국민 의식개혁 및 실천운동을 전개하여 전국적으로 호응을 얻었던 물산장려운동을 오늘의 시점에 맞게 재적용하고 또 그때의 운동을 역사적으로 재평가하고자 고당과 물산장려운동에 관한 학술대회를 세종문화회관에서 조선일보사와 공동개최하였다.
고당기념관은 1984년 6월 12일에 준공하였으며 3층에 사무실, 5층에 한나라 강좌, 세미나 등을 하는 강당이 있고 7층에 통일기원기도실이 있다. 고당선생 자료전시관을기념관 3층에 마련했다. 고당기념사업회가 발족한 이후에 가장 먼저 한 일은 어린이대공원에 제1동상을 건립한 것이다.이는 동상을 건립함으로써 전국민에게 고당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특히 자라나는 2세들에게 고당정신을 배우게 함으로써 고당의 숭고한 뜻을 전파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92년에는 독일의 통일과 국제환경의 변화 그리고 남북한의 통일이 더 구체화 됨에 따라서 통일을 염원하는 제2통일 전망대를 만들게 되었고 그 통일 전망대에 통일의 상징적인 인물인 고당선생의 동상이 들어서야 한다는 여론에 따라 고당선생의 제2동상을 오두산 통일 전망대에 세워 92년 10월 20일에 전국민의 관심 속에 성대하게 제막식을 거행하였다.









한나라 강좌는 고당 조만식 선생을 기리고 그 숭고한 뜻을 사회에 널리 확산시키고 또 그의 유업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하여 마련한 강좌로 주로 북한강좌와 통일운동을 비롯하여 국내외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대한 시사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사회저명인사 및 각계 전문분야의 전문가를 초빙하여 회원들에게 안목을 높여주고 실천하고자 개최하고 있다. 남북한이 통일이 되어 한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뜻과 아울러 통일이 된 후에는 한나라 즉 큰나라 세계적 강대국이 되어 우리 민족의 위상을 크게 높이는데 기여하고자 하는 내용을 주로 하고 있다.
위와 같은 사업과 함께 통일기금조성, 언론출판사업 등 고당선생이 역점을 두고 하셨던 사업이므로
여건이 되는대로 차근차근하게 사업을 벌려 나가고자 한다.
통일 이후에는 체제와 생활 방식의 차이로 인한 지역감정, 특히 관서이북 지역 차별 문제가 크게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비해 고당선생의 "고향을 묻지 맙시다" 정신을 바탕으로 한 지역감정 해소 노력이 지금부터 필요하다.
통일 논의의 출발점은 북한 내 인권 보장과 민주화 요구이며, 과거 이념 탄압 피해자에 대한 진상 규명과 복권을 통해
남북 간 신뢰를 쌓아야한다.고당기념사업회는 이러한 맥락에서 조만식 선생의 역사적 정통성을 재조명해 통일을 앞둔 북한 지역의 회복에 기여하고자 한다.
교육사업은 고당선생의 일관된 것이었다.따라서 통일 후 고당 선생이 설립하셨던 숭인학교의 복원을 비롯하여 평양에 대학설립을 하여 고당선생의 정신과 사상을 확대 재생산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