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당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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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을 앓던 사람

    박남수

    검은 두루마기는 무릎을 덮은 일이 없고
    당신의 옥 같은 몸은 비단에 감겨 본 일이 없다.
    한국의 촌부(村婦)가 짠
    씨날이 굵은 무명으로도
    당신은 족히 자랑을 만들었다.

    살눈썹에 서리는 자부러움 뒤에서
    당신의 작은 눈은 늘 타고 있었고
    옳은 일이면 동강 부러질지언정
    구불어져 휘이는 일이 없었다.

    오늘 누구도
    그니의 생사를 아는 이 없다.
    머리에 붕대를 감고 세상을 앓던 사람
    그 육신은 사로잡혀 적(赤)의 볼모가 되었지만
    그니가 우리의 둘레를 떠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슴마다에 새겨진 그니의 모습은
    지워지지 않고 있다.

    가져다 준 해방의 어려운 터전에
    십자가를 스스로 지고
    지금 어디서 당신은
    은전(銀錢)에 팔려간 형제들을 굽어 보시는가.

    오늘 누구도
    그니의 생사를 아는 이 없다.

    철조(鐵條)로 가로질러진 남북 삼천리
    잘리고 흩어진 몸 고달픈 형제들도 많지만
    당신은 더 멀리 당신은
    더 고달픈 어디에서 지금도
    머리에 붕대를 감고 세상을 앓고 계시리라.

    〈이 시는 고당 조만식선생 83회 생신기념경모회때 낭송됐음〉

  • 제이·엠·에쓰

    김소월

    평양에서 나신 인격의 그 당신님
    제이·엠·에쓰
    덕없는 나를 미워하시고
    재조있던 나를 사랑하셨다.
    오산(五山)계시던 제이·엠·에쓰
    십년 봄 만에 오늘 아침 생각난다.
    근년 처음 꿈없이 자고 일어나며

    자그만 키와 여윈 몸매는
    달은 쇠끝 같은 지조가 튀어날듯
    타듯하는 눈동자만이 유난히 빛나셨다.
    민족을 위해서는 더도 모르시는
    열정의 그님

    소박한 풍채, 인자하신 옛날의 그 모양대로
    그러나 아아, 술과 계집과 이욕에 헝클어져
    십오년에 허주한 나를
    웬일로 그 당신님

    맘속으로 찾으시오 오늘 아침?
    아름답다. 큰 사랑은 죽는 법 없어
    기억되어 항상 내 가슴 속에 숨어 있어
    미쳐 거츠르는 내 양심을 잠 재우리.
    내가 괴로운 이 세상 떠날 때까지.

    〈J·M·S는 조만식의 영문약자임〉